“혼자 여행하면 안 무서워?”
종종 이 질문을 받는다. “뭐가 무서워? 거기나 여기나 똑같지, 뭐. 거기 사는 사람들이 하지 말라는 거만 안 하면 돼.” 하고 허풍을 떨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가만히 있어도 갑자기 불안이 치솟는 인간이 돼서 (늙었다는 얘기다.) “아휴. 왜 안 무서워. 겁나게 무섭지.” 하고 호들갑 떤다.
거기 사는 사람들이 하지 말라는 걸 안 해도 무서운 일은 일어난다. 몇 개의 장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첫 장면은 아프리카. 남아공 치안이 굉장히 안 좋다는 얘긴 가기 전부터 귀에 못 박히도록 들었다. 거기에서 우리(함께 촬영 간 스태프)를 일정 내내 가이드해 준 관광청 직원 아담은 일정 첫날부터 내 눈을 보며 강력한 경고를 날렸다. “절대로, 나 없이 호텔 바깥으로 나가지 말아요. 밤은 당연하고 아침 산책도 되도록 하지 말아요. 알겠죠?”
시키는 대로 했다면 여기에 쓸 얘깃거리가 없겠지. 갤러리와 바이닐숍, 공방, 상점이 모여 있는 거리를 촬영하고 있는데, 아담이 잠시 급한 용무가 생겨서 자리를 떠야 한다고 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꼭 이 카페 안에 앉아 있어요. 알았죠? 딱 한 시간이야. 금방 돌아올게요.”
그런 제지 따위는 젊은 혈기와 끓는 호기심을 못 이긴다. 며칠 머문 케이프타운은 생각보다 크게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내 눈에 그랬다는 얘기다.) ‘에이. 이 대낮에 번화가에서 무슨. 30분만 둘러보지 뭐.’ 하고 길을 나섰다. 5분도 안 지났는데 ‘일’이 일어났다. 똥 싼 바지를 입고 어설프게 멋을 부린, 정수리가 내 인중쯤 오는 꼬마(남자애)가 멀리서부터 손바닥을 내밀며 나를 향해 다가왔다. 돈 달라는 시늉이다. 무시하고 지나가려는데 웬걸. 바짝 따라붙는다. 겁이 나야 하는데 성질이 났다.
‘아이씨. 아담한테 야단맞기 싫은데. 이 쥐방울만 한 게 왜 내 금쪽같은 시간과 돈을?!’
내가 너에게 나의 돈을 왜 줘야 하니. 바쁘니까 귀찮게 하지 말고 어서 내 눈 바깥으로 사라져다오, 라는 뜻을 가진 영단어 사이에 욕을 끼워 넣어 말해도 그 불량 청소년은 요지부동이었다. 이럴 땐 모국어(로 내뱉는 비속어)만한 게 없지. (아담한테 혼나기 싫어서) 분을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지르며 앞발(?)을 쿵쿵 굴리는 이상한 여자(걔 눈에 그렇게 보였을 것 같다)의 기세에 당황한 그 꼬마는 결국 ‘어머니’와 가운뎃손가락’이 섞인 조어를 소심하게 내뱉으며 나의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나도 안다. 꽤 위험한 행동이었고, 운이 좋았다.)
말 나온 김에 되짚어 보니 빌런이 꽤 많았다. 3,000원이 나오는 거리에 7만 원을 갖다 붙인 발리의 택시 기사와 “요즘 맨해튼은 그래.” 하며 28%의 팁을 강요한 뉴욕 택시 기사 등 전 세계 곳곳 기상천외한 개소리를 건네던 택시 기사들과의 추억. (우버와 그랩이 없던 시절이다.) 인도에선 해사하고 맑은 미소를 가진, 키가 약 123cm쯤 되는 귀여운 소녀가 별안간 내 손을 잡더니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염료를 치덕치덕 바른 도장을 손등과 팔뚝에 찍어댄 후 싸구려 팔찌까지 채워서 꽤 큰 액수의 돈을 강탈하기도 했다. 이런 에피소드들은 사실 밍숭맹숭한 여행에 간을 더한 맛깔진 MSG 같은 얘깃거리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진짜 무서운 순간도 있긴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그 도시가 (거친) 노숙자의 온상이라는 사실은 거기 사는 친구가 이 말을 해주기 전까진 몰랐다. “진아. 잘 들어. 다운타운 돌아다니다 보면 홈리스가 꽤 많을 거야. 그 사람들이랑 절대 눈 마주치지 마. 그리고 길가에 똥이 간혹 널려 있거든. 그거 개, 고양이가 싼 똥 아니야. 알았지? 명심해.”
(이른 아침 번화가 한 복판에서 별안간 바지를 내리더니 ‘무려’ 경찰관 앞에서 소변을 보던 노숙자 할머니와 마주치기 전까진 나도 그 말을 안 믿었다.)
며칠 머문 샌프란시스코에서 버클리에 사는 후배 집으로 넘어가기로 한 날. 차이나타운 앞, 중국 사람이 운영하는 가죽 가방 가게에 돈을 지불하고 맡겨 둔 캐리어 백을 되찾은 후 서울로 치면 여의도나 테헤란로쯤 되는 번화가에서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퇴근길 인파에 섞여 잰걸음으로 힘겹게 30kg짜리 가방을 끌고 가고 있는데 갑자기 앞에 걷던 사람이 내 뒤를 돌아보곤 거대한 해일이라도 본 것처럼 뛰어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지?’하고 돌아본 곳에 아주 젊은 노숙자가 있었다.
걔가 총이라도 들고 있었다면 “그래. 여긴 미국이니까.” 하고 납득했을 텐데. (물론 그게 아니라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손에 들려 있었던 건 도대체 어디에서 구했는지 물어보고 싶은 ‘철퇴’였다. 어떤 순간은 사실 그대로가 아니라 비약적인 과장에 가까운 잔상으로 남는데, 그날 있었던 일이 그렇다. 내 뇌에 영화처럼 찍혀 있는 장면을 묘사하자면 다음과 같다. 아주 두껍고 긴 쇠줄 끝에 달린 쇠공이 허공에 포물선을 그리는 모양새, 잘 차려입은 금융가의 남녀들이 입을 쩍 벌리며 달려가던 모습, 공중에서 춤을 추던 철퇴가 거리의 가로등에 찰싹 감기는 순간, 믿을 수 없이 맑고 영롱했던 쇳소리, “컹! 컹! 컹!”
다시 말하지만 나는 카메라를 목에 걸고 30kg짜리 한달 여행 트렁크와 함께 있었던, 그 거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행색을 한 여자였다. 그 숙자형의 타겟이 되기 전에 몸을 숨기는 것이 급선무라는 생각이 번쩍 들어서, 가방을 번쩍 들고 달렸다. 달리다가 편의점이 보여서 번개 같이 들어갔다. 필요도 없는 껌을 한 통 사고 바깥을 살피는데, 철퇴 남 대신 평정한 얼굴로 천천히 걷는 사람들이 보였다. 안심하고 밖으로 나와 다시 걷는데, 거짓말처럼 어디선가 다시 튀어나온 철퇴 남과 맑은 쇳소리. 나직이 “아이, 씨.”를 내뱉은 후 줄행랑을 치려는데 더는 가방을 들 힘도, 달릴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천만다행으로 눈앞에 치폴레(맥도날드 같은 곳이다)가 보여서 안으로 들어섰다. 통창 앞에 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아 밖을 살핀 그 순간, 거짓말처럼 그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친구들이 “여행 가서 눈 맞은 남자 없어? 혼자 다니면 말 시키는 사람 있을 거 아니야”라고 물어볼 때마다 “그런 건 영화에서나 있는 일이야.”라고 대답했었는데. 이제는 저 ‘눈맞춤’을 무용담처럼 거들먹거리며 늘어놓는다. 샌프란시스코의 철퇴남은 (겁에 잔뜩 질린) 나를 보고 해리 스타일스처럼 씨익 웃어주고는 가던 길을 갔다. 그 덕에 살아서 그랜드캐니언이랑 요세미티도 가고, 한국에 잘 돌아와서 낄낄거리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인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아… 정말이지 잊을 수 없는 친절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