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같은 ‘자유생활인’에게 집은 세상에서 제일 편한 곳이어야 한다. ‘자유생활인’은 내가 만든 용어다. ‘되도록 바삐 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자유로운 생활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유사어로는 ‘프리랜서’가 있다. 프리랜서는 ‘일정한 소속이 없이 자유 계약으로 일하는 사람’이다(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자유생활인과 프리랜서의 차이점은 생활과 일 중에서 어디에 초점을 두느냐에 있다. 자유생활인은 생활에, 프리랜서는 일에 주요한 관심을 둔다. 생활을 일보다 우선시하는 나는 자신을 자유생활인이라고 부르는 게 타당하다.
각설하고 집 얘기로 돌아간다. 자유생활인은 집에서 주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니 집안에 있는 모든 것, 이른바 인테리어에 관심이 커진다. 가령 샤워 수전, 싱크대, 조명 등 각종 설비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어지간한 것은 직접 설치하거나 손수 수리할 줄 알면 좋다.
전문가를 불러서 돈 주고 하면 되지 않느냐고? 그들의 인건비는 생각보다 높다. 국민소득이 올라가면 더욱 높아질 것이다. 그러니 그 비용을 부담하려면 우리는 일을 많이 해야 한다. 이것은 자유생활인의 태도가 아니다.
비단 돈을 아끼는 차원만은 아니다. 셀프 인테리어는 의외로 재미있고 성취감도 크다. ‘집수리 셀프 교과서’(원제목은 The Quick and Easy Home DIY)라는 책을 쓴 주택 리모델링 전문가 매트 웨버의 말을 들어보자. “결국에 수리공을 부를 수밖에 없을지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집요한 성격의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 내가 그렇다. “DIY 작업에 입문하려면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보겠다는 마음가짐과 결과물을 완성하기 위해 약간의 땀을 흘리는 것을 개의치 않는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태도다.
태도가 그렇다는 것이지 내게 손재주가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신혼 초 나는 안방 천장 전등을 교체해 보겠다고 덤빈 적이 있다. 플라스틱 소재의 원형 갓이 덮인 전등이었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려야 열리는 갓이었다. 무리하게 열려고 힘을 쓰다가 갓을 깨뜨렸다. 불안한 눈으로 지켜보던 아내는 내 솜씨에 혀를 찼다. 나는 제조사에 연락해 전등갓만 따로 주문해야 했다. 이런 소동을 몇 차례 겪고 아내는 내게 ‘마이너스의 손’이라는 별명을 달아 주었다.
수년 전 자유생활인이 된 이후 나는 본격적으로 철물, 공구, DIY, 인테리어, 셀프 수리에 관심을 두게 됐다. ‘집수리 셀프 교과서’를 탐독했고, 유튜브에서 다양한 동영상을 찾아봤다. 그러다 보니 ‘얼추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들었다.
내가 제일 처음 도전한 시공은 ‘싱크대 절수 페달’ 설치였다. 싱크대 수전을 발로 조작하는 페달 말이다. 배송된 제품을 보고 아내는 걱정했다. “당신이 진짜 이걸 설치할 수 있어요? 기술자를 불러야 하는 것 아니에요?”. 나는 작업 와중에도 영상을 여러 번 재생해 공부해 가며 설치에 성공했다. 몇 해 지났지만 지금도 아무 문제 없이 잘 작동하고 있다.
이 경험을 계기로 나는 실리콘 쏘기, 백시멘트 바르기, 싱크대 경첩 교체, 거실 LED 매립등 교체, 전등 스위치 교체 등 다양한 공사를 수행하는 쾌거를 이루었다(모두 다 우리 집에서 한 공사라 매출을 올리진 못했다).
방문 수리도 한 바 있다. 우리 어머니 댁 화장실의 욕조와 세면대에서 곰팡이 핀 실리콘을 깔끔이 뜯어내고 새로 실리콘을 쏘아 드렸다. 어머니는 “네가 언제 이런 것을 다 배웠니?”라고 기뻐하셨다. 대학 졸업 후 내가 취직했을 때보다 더 좋아하신 것 같았다.
지난 주말에는 우리 집 화장실 샤워 수전을 바꿨다. “몇만 원 더 내면 기술자가 와서 설치해 주는데 같이 결제할까요?” 새 모델을 주문하며 아내가 내게 물었다. “기술자가 여기 있는데 왜 돈 주고 기술자를 불러요?” 나는 호기롭게 반문했다. 집에 온 모델을 뜯어 보니 기존 제품과 규격이 달랐다. 기존 것은 일반형이었는데 아내가 주문한 것은 선반형이었다. 화장실 타일 벽에 구멍을 네댓 개 뚫어야 설치할 수 있는 제품이었다. 또 샤워 수직파이프가 너무 길어 10cm가량 쇠톱으로 잘라내야 했다. 콘크리트 타공에 파이프 절단까지 포함된 고난도 작업이었다. 한 시간가량 예상했는데 세 시간이 걸렸다. 설치 후 아내 앞에서 작동을 해 보이니 아내가 “수고했어요. 잘 했네”라며 흐뭇해했다.
솜씨 좋은 기술자에겐 일이 몰리는 법. 남서향 우리 집에 오후 햇볕이 많이 드니까 아내가 거실 블라인드를 암막형으로 바꾸자고 한다. 아내가 스마트폰으로 블라인드를 주문하면서 “어떻게 해요? 설치까지 같이 결제해요?”라고 또 물었다.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마이너스 손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변신한 내가 해드려야지.
새 블라인드가 우리 집에 도착했다. 박스 길이가 3m는 족히 돼 보인다. 잘 해낼 수 있을까. 나는 “주말에 한가할 때에 설치하겠다”라며 작업을 미루고 있다. 아직 박스도 뜯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