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선의가 우리를 살아가게 합니다
최갑수
며칠 전 북토크를 했습니다. 최근 펴낸 에세이 『사랑하기에 늦은 시간은 없다』 출간 기념으로 가진 자리였습니다. 작가 생활을 한 지 이십여 년 만에 처음으로 해본 북토크였습니다. 게스트로 나간 적은 몇 번 있고 강연을 한 적은 많았지만, 제가 쓴 책으로 독자들과 만나는 자리는 처음이었습니다. 조금 떨렸지만 다행히 아주 따뜻하고 다정한 자리가 됐습니다.
저는 글을 쓰는 작가이기도 하지만 책을 만드는 편집자이기도 합니다. 그날 북토크 자리에서 누군가 묻더군요. “후배나 선배들의 책을 만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여기에 대한 답으로 먼저 여행에 대해 이야기해 볼게요. 제가 오랫동안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선의' 때문이었습니다. 길을 잃고 헤맬 때면 누군가가 불현듯 나타나 제 손을 잡아 이끌어 주었습니다. 목말라하는 제게 물이 담긴 컵을 선뜻 내밀었고, 폭우가 내리는 어느 날에는 처마 밑으로 오라며 손짓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저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낯선 이들이었지만, 저는 그들의 선의에 기대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책을 만드는 이유에는 좋은 책을 만들고 싶다, 책을 만들어 약간이나마 돈을 좀 벌고 싶다 같은 이유도 있지만, ‘선의’라는 마음의 행동도 약간은 들어 있습니다. 제가 받은 선의를 갚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건 제가 다른 사람에게 똑같은 선의를 베푸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 역시 여행작가로 오래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다른 여행작가들이 겪는 어려움을 대충이나마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지금 겪고 있는 우울과 고생, 슬럼프를 저 역시 경험했거든요. 그때마다 많은 이들이 제게 손을 내밀어 주었고, 저는 그 손을 잡고 어려운 시기를 헤쳐올 수 있었습니다.
이젠 세월이 흘렀고, 저는 그때 그들에게서 받은 선의와 시행착오를 겪으며 얻은 저의 경험을 조금이나마 되돌려 주고 싶어요. 작가로 살다 보면 어떤 한순간을 정리하고 털어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걸 느낄 때가 있어요. 그걸 못하면 그 자리를 뱅뱅 맴돌다가 주저앉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만드는 그들의 책이 그들의 긴 긴 여정에 물 한 모금의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신세는 진 사람에게 갚는 것이지만, 선의는 다른 사람에게 갚아도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내가 받은 선의를 다른 여행자에게 갚는 것. 이건 여행자의 기본 수칙입니다. 이만큼 살아 보니 사는 것도 여행과 크게 다르지 않더군요. 목적지에 닿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정이 더 중요할 수도 있거든요. 선의는 우리의 여정을 더 아름답고 의미 있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삶은 여행’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젠 과거의 원한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재능이고, 선의, 그러니까 ‘선한 의지’는 습관이라는 것을 압니다. 선의는 노력하고 연습하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 같아요. 기억합시다. 어쩌면 우리가 기적이라고 생각한 많은 성취들이 누군가의 작은 선의에서 시작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