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으로의 출발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가 크게 들린다. 코로나 시국에 인파가 적은 여행지를 찾다 시작한 섬 캠핑은 늘 여유롭다. 물론 요즘은 다리로 연결되는 섬이 많아지고, 섬을 찾는 캠퍼들도 많아져 주말엔 배표가 없는 경우도 많지만 일단 섬에 진입하고 나면 특유의 고즈넉함이 결계처럼 나를 감싼다. 갑자기 들려오는 거친 호객꾼들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그 결계를 깨뜨린다.
“방은 필요 없수?” “차는 빌렸어?” 조용했던 항구는 캠퍼들의 배낭을 나르는 트럭들로 북적북적하다. 고즈넉한 갯마을을 상상하고 도착한 곳에서 바닷가 사람들의 떠들썩하고 거친 성정을 맞닥뜨리니 정신이 번쩍 든다. 모래성의 무력함이 건강한 어촌의 일상으로 대체되는 순간이다.
이장님의 차를 얻어 타고 도착한 해변 캠핑장엔 라면 하나 살 만한 가게가 없었다. 원래 섬 여행은 대부분 불편하다. 이동 수단도 여의찮고, 육지에 비해 물가는 어쩔 수 없이 비싸며, 갑작스러운 풍랑으로 발이 묶이기 일쑤다. 다리가 놓여도, 또 쾌속선으로 눈 깜짝할 새에 가 닿는다 해도, 섬은 섬이다. 그런데도 나는 왜 또 섬을 찾았나.
낙원은 쉬 지루해지는 법이지만 자주 바람을 맞고, 파도에 돌이 깎이는 섬마을은 벗기고 또 벗겨봐도 늘 새롭다. 사람은 아무것도 안 했으나 바다와 파도와 바람이 놀라운 솜씨로 낙원을 만들어 놓는다. 바닷가 곰솔 끝에 걸리는 별, 갯바람이 부는 영롱한 모래 해안. 섬에서 하루 자 봐야 알 수 있는 깊어지는 방파제의 그늘. 아무렇지 않은 섬사람들의 일상이 내륙 사람들에게는 진귀한 경험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육지에서의 말랑말랑한 걱정일랑 종종 툭툭 털어내게 된다. 게다가 섬은 수다의 볼륨을 저절로 줄일 수밖에 없는 호젓하고 낙낙한 섬만의 정서를 지녔다. 배가 끊어지면 육지에서의 걱정거리도 끊어진달까.
다시 달이 뜬다. 감정의 미련을 걷어 버리려 떠나온 길이건만, 왜 또 서울에서 보던 것과 같은 달이 소나무 끝에 걸려 있는 것일까. 텐트 앞에서 해변 모래를 그러모아 다시 모래성을 쌓아본다. 이번엔 물을 많이 섞고, 더 많이 두드렸다. 섬과 섬 사이에는 다리를 놓으면 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어떤 다리를 놓아야 할까.
문득 배 탈 때 걸려 온 엄마의 전화가 생각난다. 침낭 속에서 핫팩을 만지작거리며, 썸남에게 보냈던 달 사진을 엄마에게 보냈다.
“주무셔?”
‘1’은 사라졌지만 썸남과는 달리 그녀에게선 바로 전화가 걸려 온다.
“잘한다 잘해. 그카고 댕긴다고 결혼을 안 하지!”
대뜸 급발진하는 잔소리 너머 진한 반가움이 느껴진다.
“달 사진이가? 아이고, 이제 바깥에서 자면 입 돌아간데이! 돌아 댕긴다고 끼니 거르지 말고, 밥 단디 잘 챙기 묵어라!”
엄마가 있는 아파트 앞에도 저 수평선을 밝힌 것과 같은 모양의 달이 떴을까. 다음에 다가오는 사람과는 어차피 무너질 모래성 대신 아주 튼튼한 다리를 지으리라. 아무리 올라가 뛰어도 무너지지 않는 아주 튼튼한 관계의 다리 말이다. 나라는 섬에서 당신이라는 섬으로 언제든지 오갈 수 있고, 밀물이 되면 가끔 물속에 잠겨,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그런 다리. 그 다리 위에 떠오른 달을 함께 바라보는 상상을 해본다.
늦은 밤 ‘자니’ 공격을 할 이도, 달이 떴다고 전화를 할 이도 엄마뿐이지만 이제 더는 불행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섬마을 아기처럼 까무룩 잠이 든다. 그날 그 해변에 내가 쌓아놓았던 모래성은 아직 남아 있을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