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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2 캠핑이 좋아서 25 | 박찬은
가끔은 지붕 있는 곳에서도 잡니다(feat. 오두막 캠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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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금요일, 박찬은 작가의 '캠핑이 좋아서'를 보내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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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캠핑이 좋아서 26 | 박찬은
가끔은 지붕 있는 곳에서도 잡니다(feat. 오두막 캠핑)
영하 13도에 난방도구도 없이 밖에서 캠핑하는 건 미친 짓이라는 결론을 내린 후, ‘화목난로’가 있는 오두막 캠핑장으로 향했다. 캐빈 안에서 화목난로와 전기담요를 켜고 자는 호사를 허락하기로 했다. ‘Bush finders’라고 적힌 간판 글씨 뒤로, 소녀 감성의 아기자기한 정원과 박공지붕을 올린 나무 오두막이 눈에 들어온다. ‘여성 전용, 한 사이트 당 최대 2인’이라는 룰은 누가 입실을 하고 퇴실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고요한 캠핑장을 만들어냈다.
오두막 캐빈을 예약하면 웰컴 드링크와 조식, 장작 한 망을 제공한다. 캠핑장 내 카페에는 실내 샤워실도 있다. 그러나 유명 캠핑 유튜버들이 ‘내돈내산’ 이곳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화목난로가 있는 이 박공지붕 캐빈 때문이리라. 텐트만 없을 뿐 침낭과 조리도구 등 다른 캠핑 도구는 모두 지참해야 한다. “캠핑은 하고 싶은데 아직 겁난다는 분들이 많이 오세요.” 미술 관련 일을 했다는 사장님은 퇴직 후 귀농을 했다가 ‘너무 심심해서’ 캠핑장을 열었단다. 과연 그는 대화를 하면서도 뺄 것 하나 없는 움직임으로 커피를 볶고 벽의 그림을 바로 걸었으며 의자의 벗겨진 틈을 칠했다. 덕분에 나는 그가 아들이 보여준 유럽의 캐빈 사진들을 통해 이곳 오두막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사실도, 목수들 공임비가 얼마나 비싼지도, 나무판 아래 배수구를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도 잘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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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낭을 펼 오두막으로 향해본다. 창 유리에는 결정 모양이 다 보일 만큼 큼지막한 눈송이가 달라붙어 있고, 실내에는 미세한 모닥불 냄새가 남아 있었다. 재봉틀로 천 조각을 패치 워크한 커튼, 대들보에 연통을 단단히 고정해 둔 철제 이음선에서 손끝이 꼼꼼한 누군가의 성실함으로 조금씩 채워졌을 시간이 보인다. 나는 대도시로 나갔던 딸이 수십 년 만에 고향 집으로 돌아와 먼지를 터는 것처럼 화목 난로에 잔가지를 넣고 불을 붙였다. 고작 나무를 쪼개 불을 붙였을 뿐인데 자기 효능감이 이렇게 올라가는 것은 캠핑이 지닌 순기능 중 하나일 것이다. ‘난방+불멍+요리’라는 1타 3피 기능의 화목 난로는 마치 성능 좋은 인덕션처럼 스테이크가 놓인 팬을 받아 들었다. 미리 간을 해둔 고기가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익는다. 흰 허벅지를 드러낸 대파가 그 옆에 가지런히 누워 석쇠 모양으로 태닝을 하고 나면 이제 좀 더 날씬한 아스파라거스를 구울 차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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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와인은 특유의 코뿔소 그림으로 유명한 ‘라 스피네따(La Spinetta)’의 일 네로 디 카사노바 와인.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근본 있는 와이너리’라고 되어 있던 게 생각나 마트에서 잽싸게 집어 들었다. ‘제우스의 피’라는 뜻을 지닌 산지오베제 품종으로 바닐라와 건초 향이 살짝 올라온다.
‘눈 내리는 오두막’이라는 단어가 주는 서정성은 와인과 만나자 더욱 폭발했다. 비록 통유리를 통해 바라보는 풍경이 프랑스 어딘가의 와이너리가 아니라 쓰러져가는 빈집 소 외양간이라도 말이다. 잘 달궈진 화목 난로 위에 후식용 귤을 껍질째 얹었다. 귤에서 오렌지 주스 향이 나면 꺼낼 때가 된 거다. 반쯤 익은 채 말랑말랑해진 귤은 탕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사람처럼 껍질을 훌훌 잘 벗어 던졌다. 생각만 해도 귀밑 침샘이 달아오르는 맛이다. 화목난로의 열기와 술의 시너지로 인해 우리 둘의 볼은 점점 불타올랐고, 찜질방에 온 듯 빨개진 서로의 얼굴을 보며 우린 또 침낭 속에서 깔깔 웃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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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눈은 어느새 비로 바뀌어 있다. 텐트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도 좋지만, 따뜻한 실내에서 비 오는 바깥 풍경을 보며 마시는 커피의 쾌적한 맛이야 말해 무엇하랴.
어제 능숙하게 불을 붙이는 나를 선망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후배 B가 말했다. “선배, 오늘 불은 제가 피워 볼게요.” 중앙아시아의 고원과 북유럽 시골에서 캠핑을 하며 마른 가지를 모아 라이터로는 불을 붙여봤지만 모든 시설이 잘 갖춰진 한국의 캠핑장에서, 그것도 토치는 처음이라는 B가 다소 수줍게 가스 토치를 집어 든다. 흰 연기만 토해내던 장작은 자꾸만 불이 꺼졌다. ‘잔가지와 장작을 서로 붙여주고, 여러 군데 불을 놓으라’는 내 팁을 받아들인 결과, 그녀는 5분 만에 파이어 마스터(fire master)가 되었다. 물론 그 뒤로 “선배! 불 너무 예쁘지 않아요?”라는 말을 아흔아홉 번 들었어야 했지만.
버터에 구운 빵과 소시지, 계란 프라이와 사과 두 쪽, 체리, 귤 샐러드. 그리고 갓 내린 커피. 조식은 캠핑장 사모님의 솜씨다. 그녀가 부엌에서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음은 소리로만 들렸다. 그제야 오두막 안의 커튼을 누가 꼼꼼히 바느질했는지, 원목 개수대에 각종 양념과 조리도구를 누가 정연하게 정리해 둔 건지 알게 됐다. 캠핑장을 나올 때까지도 나는 그녀를 마주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미 만나본 듯 그녀의 성정이 느껴졌달까. 메신저 섬네일 사진을 애써 클릭하지 않아도 이미 마음에 들어버린 사람을 만난 느낌.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고민했음이 느껴지는 손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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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식을 먹는데 창밖으로 테라스 간판에 적힌 글씨가 눈에 띈다. ‘Tempus fugit, amor manet’. 라틴어로 ‘시간이 흘러도 사랑은 남는다’는 뜻이다. 어머, 사장님 가슴에 소년이 사나 봐. 그러나 속세에 찌든 도시인들의 대화는 금방 세속적인 것으로 넘어간다. 누가 시골 빈집을 사다 고쳐서 카페를 만들었는데 유튜브에서 대박 났대, 계곡 건너편 저 빈집은 얼말까, 평당 50만 원은 할 거다, 어차피 넌 면허도 없어서 여기 공사 챙기러 오지도 못한다…… B와 만담의 대가 장소팔과 고춘자처럼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조식 접시엔 어느덧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좋아, 사랑 대신 포만감은 남았군. 멋진 식사였어.
배낭을 꾸려 캠핑장을 빠져 나온다. 후배는 하루 만에 파이어 마스터가 되었고, 뻐근했던 나의 허리는 화목난로라는 윤활유를 발라서인지 휙휙 잘 돌아갔다. ‘The Biggest Little camping site in the world’라는 입구 팻말이 눈에 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리틀 캠핑장’. 작지만 큰 오두막.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해도 절대 쏠릴 일 없을 만큼 뒷좌석까지 장비로 꽉 채우고 운전할 때도 있다. 불멍과 음악과 술, 그리고 별이 알알이 박힌 밤하늘을 눈앞에 두고도 친구와 싸울 때가 있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하고 있으면서도 ‘지금 이러고 있으면 안 되는데, 다른 일을 또 해야 하는데’ 하는 불안한 마음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캠핑’은 문진처럼 지긋이 눌러주었다. 해변에서 맨몸으로 비박을 하고 해발 800미터 산 정상으로 백패킹을 가기도 하지만 가끔은 ‘한뎃잠’이 아닌, 지붕 아래 잠을 자며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무해한 시간을 가지는 이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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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은은 심리학을 전공했으며 캠핑과 스쿠버다이빙, 술을 사랑한다. 삐걱대는 무릎으로 오늘도 엎치락뒤치락 캠핑과 씨름하며 퇴사 욕구를 잠재우는 중이다. 그의 캠핑이 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 @camping_cs을 따라가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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